1. 유러피언 해커들의 유토피아 37c3 -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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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러피언 해커들의 유토피아 CCC - 배경
  2. 유러피언 해커들의 유토피아 CCC - 구성
  3. 유러피언 해커들의 유토피아 CCC - 프로그램
  4. 유러피언 해커들의 유토피아 CCC - 만난 사람들

위키리크스 창립자 줄리언 어산지 (Julian Assange)의 전기를 다룬 영화, 베네딕트 컴버배치 주연의 <제5원소>를 보면 줄리언 어산지가 위키리크스 프로젝트를 처음 세상에 공개하는 장면이 있다. 자세히보면 24c3이라는 컨퍼런스 이름을 볼 수 있는데 이번 글에서 내가 소개하려는 행사가 바로 이 컨퍼런스, Chaos Communications Congress이다.

Chaos Communications Congress

독일에는 지역마다, 심지어 베를린같은 대도시에는 동네마다 해커스페이스라는 공간이 있고 다양한 해커, 창작자, 아티스트들이 한 공간에 모여 다양한 종류의 창작 활동을 공유한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커뮤니티로 Chaos Computer Club(이하 CCC)를 꼽을 수 있다. CCC는 1981년에 설립되어 현재 약 7,700명의 회원이 가입되어 있다고 한다(위키피디아 참조). Chaos Communications Congress는 이 CCC 커뮤니티가 주축이 되어 매년 연말마다 주최하는, 4일간 독일 및 전세계 해커 및 활동가들이 모이는 연례행사를 의미한다. 제5원소 영화에서 본 24c3에서 보듯 보통 앞에 회차를 뒤에 c3을 붙여 '회차c3'으로 표기한다. 줄리언 어산지가 위키리크스를 발표한 행사는 24c3, 즉 24번째 행사이고 이번에 내가 참석했던 행사는 37c3, 37번째 행사였다.

독일 해커 커뮤니티와의 인연

약 10년 전, Creative Commons Korea 라는 비영리 단체 소속으로 시빅해킹 활동을 하며 Code for Seoul 이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한 적이 있다. 당시 전세계에서 시빅해킹이라는 문화가 활발히 만들어지면서 'Code for <도시>'라는 이름의 많은 시빅해킹 커뮤니티들이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었고 Code for Seoul 커뮤니티도 이 네트워크 안에 속해있었다. 2014년 Open Knowledge Foundation 에서 Open Knowledge Festival라는 행사를 베를린에서 때마침 Code for America와 Code for Germany 를 중심으로 전세계 'Code for <도시>' 커뮤니티들이 모이는 기회를 갖게 된다.

아직 개발을 한참 공부하던 시기였던 나는 전세계에서 모인 시빅 해커들, 특히 이미 많은 지원을 받으며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Open Knowledge Foundation 과 Code for Germany 로부터 큰 영감을 받았다. 오래 전의 일이라 감상이라고 남기기에는 기억이 너무 가물가물 하지만, 한국에서는 고작 Creative Commons Korea 라는 한 비영리 단체가 'open' 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수많은 활동들 - 공유경제, 데이터 저널리즘, 오픈 데이터, 시빅 해킹 등 - 에 겨우 발만 담그고 있는 상황이었다면 독일은 이미 너무나 많은 해커 커뮤니티들이 존재하고 Open Knowledge Foundation 같은 탄탄한 재단들의 지원 아래 사회 문제를 기술로 해결하려는 다양한 시빅해킹 활동들이 이뤄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후로 각자의 시빅해킹 활동을 공유하며 인연을 이어가던 중 Code for Germany 가 독일 내에서 운영하는 프로젝트 Jugend Hackt를 2018년, 2019년 두 해에 걸쳐 한국과 아시아에서 독일 학생들과 아시아 학생들이 만나는 공동 이벤트를 개최하였고 이 때 한국 학생들을 위한 멘토로 참석하여 오랜만에 독일의 시빅 해킹 프로젝트를 옆에서 볼 기회를 갖게 된다. 지난 10년 전의 이야기가 너무 길어져버렸는데 바로 여기서 두 명의 활동가, Jugend Hackt 담당자 Paula와 Jugend Hackt 디자인 담당자 (이후 36c3 행사 전체 디자인을 담당하게 되는) 예술가 Bleeptrack 을 만나고 이 두 친구들의 초대로 나는 생에 첫 Chaos Communications Congress, 36c3으로 향하게 된다!

36c3

이 때의 충격은 생애 첫 해외 여행이자 처음으로 해커 문화를 접했던 2014년 Open Knowledge Festival 때 느낀 것보다 훨씬 더 강렬했다. 2014년에는 흥분과 재미로 가득했다면 2019년은 오히려 정말 충격이라는 표현이 적절한 것 같다. 수많은 워크샵과 컨퍼런스 강연, 지식 공유, 독일 전역 및 유럽에서 모인 해커커뮤니티들마다 꾸며놓은 부스와 테이블, 자체 통신 설비, 자체 우체국(?) 등 나의 첫번째 ccc는 '와 이런게 있어? 와 이런 것도 있어? 와 뭐야 이거?' 하는 충격으로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고 'CCC는 독일의 반골기질과 서브컬쳐 가득한 독일의 해커들이 4일간의 유토피아이자 코뮌을 지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세상에 딱 하나의 행사만 참석할 수 있다면 고민없이 CCC를 선택하겠다고, 무슨 일이 있어도 매 년 CCC에 참석하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이 때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를 알 수 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4일간의 행사가 열리기 전 날, 나를 초대해 준 친구가 행사 공간으로 나를 데려가 공간 곳곳에 설치된 다양한 설치물들을 보여주고 설명을 해주었는데, 이 때 이미 유토피아의 맛(?)을 봐버렸고 당시 한참 고민 중이던 회사 퇴사를 결심하고 퇴사 결심 DM을 보내게 되는데... 그리고 귀국하여 퇴사일을 정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37c3

그 후 4년이 지났다. 모두가 알다시피 코로나가 터졌고 CCC도 그동안 열리지 않았다. 각 나라에서 점점 정책을 풀어가던 2022년에도 조금은 기대했으나 안타깝게도 열리지 못한 채 맞이한 2023년, 드디어 독일 친구로부터 반가운 메시지를 받게 된다.

CCC 열린대! 너 올거지? 티켓 오픈일은 아직 안정해졌어. 열리면 알려줄게.

이미 22년에도, 23년에도 독일을 다녀왔고 24년 여름에도 함부르크에 있는 분과 두 달간 집을 바꿔 살아보기로 약속한 터라 아주 잠깐 고민을 했지만 그래도 어쩌나, CCC 인데. 어쩌면 내가 한국에 살면서 삶의 길을 잃을 뻔한 순간에 그 길을 찾게 해준 행사인데. 라는 마음으로 비행기표를 끊었고 올해도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4일간의 행사를 즐겼다.

2019년 당시에는 36c3 참석 이후 회사를 퇴사하기로 결심하면서 앞으로의 커리어와 활동을 고민하던 시기가 겹쳤고 행사에 흠뻑 취해 되려 멍한 상태로 여운에 젖었던 탓에 그 때의 충격과 흥분을 나의 친구들에게 전하지 못하고 나의 기록으로 남기지 못했던 아쉬움이 컸다. 이번에는 행사 참석 전부터 꼭 기록으로 남겨야지 마음을 먹고 있었고 행사 전후로 새로운 독일 해커 커뮤니티의 친구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번 여행 동안 내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 남겨보면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어는 전혀 할 줄 모르고 영어도 유창한 수준이 아니라 행사의 모든 프로그램을 정확하게 소화해내진 못했지만 내가 느낀 경험의 틀 안에서 CCC라는 행사는 어떤 행사인지, 나는 37c3에서 어떤 프로그램들을 들었는지, 그리고 이번 여행 동안 만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잘 정리해보려고 한다. 이걸 기회로 DJ로 참석한 한국 분 외에도 더 많은 한국 친구들이 함께 38c3을 즐기게 되길!

한국에서 스튜디오로칼 이라는 이름으로 구성원들의 자유로운 창작이 이어지는 우리만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고, 슬러기시 해커스 커뮤니티오픈와치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방식의 협업 및 활동을 공유하는 것을 언제나 좋아합니다. 언제든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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